2020-02-11

교회 영상 <주님은 어떻게 오실까요> 복음 만담




영상 소개

교회 영상 <주님은 어떻게 오실까요> 복음 만담
말세에 모든 크리스천들은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주님은 대체 어떻게 오시는가? 혹자는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하며, 혹자는 ‘도적 같이 이르리라’는 예언,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고 이 세대에 버림을 받는다’는 예언, ‘밤중에 신랑을 맞으라고 외치는 소리’가 난다는 예언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님은 과연 어떻게 오시는가?

[동방번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재림하신 예수님, 곧 말세의 그리스도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사역으로 인해 생겼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말씀에 정복되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 교회는 완전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이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인솔하시고 목양하시는 것이지 절대 어떤 한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곧 진리ㆍ길ㆍ생명이십니다.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미 나타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20-02-10

교회 만담 <우리 목사님이 그러셨죠> 하나님을 믿으면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





영상 소개

교회 만담 <우리 목사님이 그러셨죠> 하나님을 믿으면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
우순종은 크리스천으로, 목사를 대단하게 숭배하는 교인이다. '목사는 하나님께서 세우셨기 때문에 목사에게 순종하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보니, 항상 목사의 말을 따른다. 심지어 주님을 맞이하는 일까지도 목사의 결정에 의지하는 우매한 길을 가고 있는데...
3명의 만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주님을 믿으면 목사가 아닌 주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있다.
[동방번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재림하신 예수님, 곧 말세의 그리스도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사역으로 인해 생겼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말씀에 정복되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 교회는 완전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이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인솔하시고 목양하시는 것이지 절대 어떤 한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곧 진리ㆍ길ㆍ생명이십니다.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미 나타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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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9

너는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하는 사람인가?




   지금 너희가 지내는 매 하루는 아주 관건적이고, 너희의 ①귀숙과 운명에 대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생을 헛되이 살지 않도록, 너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하고, 지금 흘러가고 있는 일분일초를 아껴야 하며, 모든 시간을 확보하여 자신에게 최대의 수확이 있게 해야 한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너희는 모두 뜬금없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너희 각 사람의 행위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다. 이는 내가 너희들에게 기대했던 것이 너희의 지금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 각 사람이 모두 위험한 지경(원문: 邊緣)에 처해 있고, 지난날 너희가 구원을 청하던 소리와 진리를 추구하고 광명을 지향하던 마음의 소리도 이제는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최후에 너희가 내게 보답하는 ②표현이고 또한 내가 지금까지 기대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너희가 나를 너무나 실망시켰기 때문에 나는 사실을 어기면서 말하고 싶지 않다. 아마 너희는 이대로 수긍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사실을 마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나는 너희에게 정중히 묻겠다. 이 여러 해 동안 너희의 마음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가득 차 있었는가? 너희의 마음은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하였는가? 너희는 내 질문이 너무 갑작스럽다고 말하지 말고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느냐고 묻지도 마라. 너희는 알아야 한다, 내가 너희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너무나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나의 마음이 너희의 모든 행위에 너무나 몰입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너희를 끊임없이 책망하면서 갖은 고생을 참고 견디었다. 그러나 나에 대한 너희의 보답은 그저 도외시하는 것과 막무가내의 태도이다. 너희가 나를 이렇게 형식적으로 대하는데, 설마 내가 전혀 모르겠는가? 너희가 그렇게 여긴다면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선대하지 않는다는 이 사실을 더욱 증명하게 된다. 그러면 나는 너희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고 말한다. 너희는 모두 너무나 총명하다 못해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희는 또 나에게 무엇을 내놓겠는가?

    내가 가장 관심을 갖는 문제는 바로 너희의 마음이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하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또 너희 각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하고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지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기를 바란다. 아마 너희는 지금까지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너희가 이 문제의 답을 얻을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겠다!

    기억이 있는 사람은 모두 이런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즉, 사람은 다 자신을 위해 살고, 자신에게 충성한다는 것이다. 나는 너희의 답이 완전히 정확하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희는 다 각각 저마다의 생활 속에서 생존하고 있고 각자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충성하고 있는 것은 너희가 사랑하는 사람과 너희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너희는 결코 자신에게 완전히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너희들 각자가 다 자기 주변의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에 지배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결코 자신에게 진정으로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너희 모두에게 자신에게 충성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충성하고 있는 그 어떤 것에 대한 너희의 충성심을 폭로하고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여러 해 동안 너희들 어느 한 사람의 ‘충성’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너희는 여러 해 동안 나를 따랐지만 나에게 털끝 만큼도 ‘충성’한 적이 없으며, 너희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심지어 언제 어디서나 마음속에 단단히 간직하고 있고 또한 지금까지 그것을 버린 적이 없다. 너희는 모두 나를 따르고 있으면서, 심지어 나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 또 너희가 좋아하는 것들에 열중하고 너희가 사랑하는 것들을 열애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요구한 충성심을 이용하여 너희의 아끼는 것(원문:宠物)에 충성하고 그것을 귀중히 여기고 있다고 말한다. 비록 너희가 나를 위해 조금 바쳤다 하더라도 그것은 너희의 전부를 뜻하지 않고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충성했음을 뜻하지 않는다. 너희는 자신이 열애하는 사업에 몸을 담고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자녀에게, 어떤 사람은 자신의 남편에게, 어떤 사람은 아내에게, 어떤 사람은 금전에 충성하고, 어떤 사람은 사업에, 어떤 사람은 상사에게, 어떤 사람은 지위에, 어떤 사람은 여자에게 충성한다. 너희는 너희가 충성하는 것들을 위해 피로를 느낀 적이나 고민한 적이 없고, 갈수록 자신이 충성하는 것들을 더 많이, 더 잘 소유할 수 있기를 갈구하면서 포기한 적도 없다. 너희는 지금까지 나를, 그리고 내가 한 말을 너희가 열중하고 있는 모든 것의 뒷 자리에 놓았는데, 그렇게 한 것도 마지못해 한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 뒷 자리마저도 자신이 충성하려는, 하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위해 남겨 두었다. 그들은 나에 관한 것을 마음에 둔 적이 전혀 없다. 너희는 혹시 너희에 대한 나의 요구가 지나치고 내가 너희를 억울하게 한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희는 이 같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너희의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워할 때, 너희가 내게는 한 번도 충성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는가? 그때 너희는 이로 인해 괴롭지 않았는가? 너희가 기쁨 가득한 마음으로 노동의 대가를 받을 때, 너희는 자신이 진리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으로 인해 낙담되지 않았는가? 너희가 나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으로 인해 통곡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언제 있었는가? 너희는 자신의 자녀를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내고 무진 애를 쓰면서도 여전히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자녀에게 세심하지 못했고 자신의 온 힘을 다하지 못했다고 여긴다. 그러나 나에게는 어떤가? 너희는 지금까지 나를 진지하게 대한 적이 없고 단지 기억으로만 남겨 놓았을 뿐 결코 마음속에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지는 않다. 너희에 대한 나의 애쓰는 마음을 너희는 지금까지 느낀 적이 없고, 이해한 적이 없으며 조금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이런 ‘충성’은 내가 오랫동안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증오하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말하든, 너희는 여전히 한두 가지만 인정할 뿐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너희가 자신감으로 가득 차 항상 내 말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면 나에게는 그래도 너희의 자신감을 상대해 줄 방법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나는 너희에게 내 말은 다 진실하고 사실을 왜곡하지 않은 것임을 인정하게 할 것이다.

    지금 너희 각 사람 앞에 돈을 얼마 놓아둔 후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고 또한 너희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너희 대다수는 돈을 선택하고 진리를 포기할 것이다. 그나마 좀 나은 사람은 돈을 버리고 마지못해 진리를 선택할 것이고, 중립적인 사람은 한 손에는 돈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진리를 붙들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의 진면모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너희는 너희가 ‘충성’하는 모든 것과 진리 사이에서 다 이렇게 선택할 것이고, 너희의 태도 또한 여전히 이럴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너희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다 옳고 그름에서 배회하지 않았는가? 가정과 하나님, 자녀와 하나님, 화목과 파탄, 부와 빈곤, 지위와 평범함, 옹호받는 것과 배척당하는 것 등등 모든 정(正)과 반(反), 흑과 백의 투쟁에서 너희는 무엇을 선택하였는가? 너희는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화목한 가정과 가정의 파탄 사이에서 너희는 전자를 선택하였고 게다가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금전과 본분 사이에서 너희는 또 전자를 선택하였는데, 심지어 돌이킬 의지조차 없었다. 사치와 빈곤 사이에서 너희는 전자를 선택하였고, 자녀, 아내, 남편과 나 사이에서 너희는 전자를 선택하였으며, 관념과 진리 사이에서도 너희는 여전히 전자를 선택하였다.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누그러지지 않고 또 너희의 온갖 악행 앞에 나는 실로 너희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고 그야말로 너무나 놀랐다. 오랜 시간의 심혈로 바꿔 온 것은 놀랍게도 너희가 나를 포기하고 나에 대해 막무가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날이 이미 각 사람 앞에 전부 드러나 있기 때문에 너희에 대한 나의 기대는 오히려 날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도 여전히 어둡고 사악한 것을 추구하면서 손을 떼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너희의 결말은 어떻겠는가? 너희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너희에게 다시 한 번 선택하라고 한다면 너희는 또 어떤 태도를 보이겠는가? 설마 또 전자일 것인가? 너희는 여전히 내게 실망과 고통스러운 슬픔을 안겨줄 것인가? 너희의 마음은 조금밖에 안되는 따스함으로 여전하겠는가? 너희는 아직도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지 모르는가? 지금 너희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 내 말에 순복하겠는가 아니면 싫증을 내겠는가? 내 날은 이미 너희의 눈앞에 놓여졌고 너희가 직면한 것은 새로운 삶과 새로운 출발점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알려주겠다, 이번의 시작점은 이전의 새 사역의 시작이 아니라 옛 사역의 마무리 단계이고 또한 최후의 일 막이다. 나는 너희들 모두가 이 시작점이 평범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머지않은 어느 날, 너희는 이 시작점의 진정한 함의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함께 이 시작점을 지나 다음의 마무리 단계를 맞이하도록 하자! 하지만 내가 너희에 대해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은 너희가 비정의와 정의에 직면하면 늘 전자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 너희의 과거이다. 나 또한 너희의 과거를 하나 하나 잊어버리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리 쉽지는 않다. 하지만 내게는 아주 좋은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장래로 과거를 대체하고 너희 과거의 어두운 그늘을 사라지게 하는 것으로 오늘의 진정한 모습을 바꾸어 오는 것이다. 그러자면 너희를 번거롭게 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너희에게 다시 한 번 선택하도록 하여 너희가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하는 사람인지를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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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

②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2020-02-08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경영은 각 사람에게 있어서 매우 생소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은 사람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며 그것은 다만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어서 하나님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하나님의 경영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그리하여 인류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아주 모호한 일이 되었고 아주 공허한 말이 되어 버렸다.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비록 구원을 받기 위한 것이고 아름다운 귀숙(역주: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지만 사람은 하나님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지, 인류가 어떻게 협력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인류가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경영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의 계획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하나님의 경영을 중요시하지 않아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졌고, 나아가 무엇이 피조된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을 믿는 것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 등등 사람이 구원받는 것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런 문제를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더 많이 하나님을 따르는 대열에 끼어들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각 사람이 단지 복을 받고 재난을 피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기 위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의의를 분명하게 알도록 하기 위해, 또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확하게 선택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경영과 관련되는 이 방면의 화제를 나눠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경영이 사람에게는 아주 심오한 것이지만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는 사역마다 모두 하나님의 경영과 관련이 있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과 관련이 있으며, 인류의 생명과 삶 그리고 인류의 귀숙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하는 사역과 사람에게서 하는 사역은 아주 현실적이고 의의가 있는 것이며, 사람이 볼 수 있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만약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이 사람에게 있어 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하는 것이 또 무슨 의의가 있겠는가? 그러한 경영이 또 어찌 사람으로 구원받게 할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오직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재난을 피할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경영을 언급하기만 하면 침묵을 지키고 전혀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무미건조한’ 문제는 안다고 해도 자신의 생명이 자라나게 할 수 없고 어떤 유익한 것도 얻을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설령 하나님의 경영에 관한 말을 들었을지라도 그것을 건성으로 대할 뿐 결코 보배로 받아들이지 않고 생명의 일부분으로는 더욱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목적은 아주 간단한데, 그것은 단 하나의 목표, 즉 복받는 것이다. 그것 외에 그들은 자신의 목표와 전혀 상관없는 일은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어 복을 받는 것은 가장 정당한 목적이고 또한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가치라고 여긴다. 만약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지금은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상태이다. 그들의 목적과 속마음은 듣기에는 아주 정당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동시에 다 화비(역주: 헌신, 소비)하고 봉헌하고 본분을 하고 있으며 또한 청춘을 바치고 가정과 직업을 버리고 심지어 오랜 세월 밖에서 동분서주하며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최종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취향을 바꾸고 자신의 인생관을 바꾸었으며 심지어 자신의 추구 방향도 바꾸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길이 얼마나 멀든, 도중에 얼마나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든 흔들리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뛰어다닌다. 어떤 힘이 그들을 그렇게 계속 바칠 수 있게 하였는가? 그들의 양심인가? 그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인격인가? 사악한 세력과 끝까지 맞서려는 그들의 의지인가?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고도 보수(報酬)를 바라지 않는 그들의 믿음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아낌없이 모든 것을 바치려는 그들의 충성심인가? 아니면 개인의 지나친 요구가 전혀 없는 그들의 봉헌 정신인가?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심혈과 대가를 바칠 수 있다니, 그야말로 대단한 기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도대체 얼마나 바쳤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잠시 논하지 말자. 하지만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우리가 해부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그 속에 사람의 이익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밖에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가?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우리는 사람이 여태껏 발견하지 못한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즉, 사람은 하나님을 단지 적나라한 이익 관계로,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로 대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일 뿐이다. 피고용인이 수고하는 것은 다만 고용인이 주는 삯을 받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이익 관계에는 혈육 같은 친밀한 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주고 받는 사랑은 없고 베풀어 주고 불쌍히 여기는 것만 있으며,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으며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사이는 없고 영원히 넘어갈 수 없는 깊은 골만 있을 뿐이다. 일이 이미 그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가 그런 흐름을 되돌릴 수 있겠는가? 또 그런 관계가 위급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내가 확신하는데, 사람이 모두 복받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 빠져 있었을 때 아무도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처럼 민망하고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음을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인류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가장 슬픈 일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자신의 경영을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경영을 본체만체하는 것이며 가장 크게 실패한 일은 하나님께 순복(역주: 순종)하고 경배하려고 추구하면서 그와 동시에 자신이 바라는 귀숙의 꿈을 만들고 있고, 어떻게 해야 가장 큰 복과 가장 좋은 귀숙을 얻을 수 있겠는지를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설령 사람이 모두 자신이 비참하고 가증스럽고 가련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라도 자신의 꿈과 소망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되겠는가? 누가 또 자신의 발걸음을 저지하여 더는 자신을 위해 무엇을 타산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그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그의 경영을 완성하는 사람과 그에게 순복하기 위해 그의 경영 사역에 온 몸과 마음을 쏟아붓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지 날마다 그에게 두 손을 내밀어 구걸하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그를 위해 좀 화비하고는 그에게 빚을 받아 내려고 기다리는 사람을 원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하나님은 조금 봉헌을 하고는 그것을 자격으로 삼는 그런 사람들을 증오하고, 그의 경영 사역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늘에 올라가 복받는 일에 대해서만 말하기 좋아하는 그런 냉혈 인류를 증오하며,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하는 이 기회를 틈타 사리사욕을 채우는 그런 사람들은 더욱 증오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경영 사역에서 성취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단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역사하는 기회를 빌어 복을 받을 수 있겠는지에만 관심을 가지며,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전심으로 자신의 앞날과 운명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반감을 가지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는지에 대해,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그런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 사역 밖에서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행실은 하나님께 기억되지 않고 하나님께 칭찬받지 못하며 더욱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도 못한다.

    망망한 우주 궁창에 얼마나 많은 생령(生靈)이 번성하고 있는가. 그들은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생명의 법칙과 그 불변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죽어서 떠나는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가져가고 살아 있는 사람은 또 죽은 사람의 역사(歷史)의 비극을 되풀이하고 있다. 인류는 자신도 모르게 물어보게 된다. ‘우리는 왜 살고 있지? 왜 죽어야 하지? 누가 이 세계를 주관하고 있을까? 누가 또 이 인류를 창조하였을까? 정말 대자연의 조화일까? 인류는 정말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을까? ……’ 수천 년에 걸쳐 인류는 이런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하였는데, 불행하게도 인류가 이런 문제에 집착할수록 점점 더 과학을 갈망하게 되었다. 과학이 사람의 육체에 잠시적인 만족과 누림은 가져다주었지만 인류를 영혼 깊은 곳의 고독과 쓸쓸함 그리고 감추기 어려운 공포와 무력함에서 벗어나게는 할 수 없었다. 비록 인류가 육안으로 볼 수 있고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과학 지식만으로 심령을 마비시키고 있을지라도 오묘한 비밀을 탐구하려는 인류의 발걸음을 저지하지는 못한다. 인류는 우주 만물의 주재자가 도대체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인류의 최초와 장래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며, 어쩔 수 없이 이 법칙 속에서 살아갈 뿐 아무도 벗어날 수 없고 아무도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만물 가운데서, 천우(天宇) 위에서 태고부터 영원까지인 그분이 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류가 지금까지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던 그분이며, 인류가 지금까지 그 존재를 믿지 않았던 그분이지만 그는 인류의 선조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생명을 베풀어 준 그분이고, 인류가 생존하도록 공급하고 자양(滋養)하는 그분이며, 인류를 오늘까지 인도한 그분이고, 더욱이 인류가 생존하는 데에 있어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그분이다. 그는 만물을 주재하고 있고 천우 중의 만물과 생령을 주재하고 있으며, 사계절을 주관하고 있고 풍상설우(風霜雪雨)를 조절하고 있으며, 인류에게 햇빛을 베풀어 주고 인류에게 밤의 장막도 가져다주었으며, 하늘땅을 펴고 인류에게 산과 강과 호수와 그 속의 생물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행사와 능력은 무소부재하며 그의 지혜와 권병(역주: 권세)도 무소부재하다. 이 모든 규율과 법칙은 그의 행사가 체현(體現)되는 것이고 그의 지혜와 권병이 유로(역주: 밖으로 흘러나옴)되는 것이다. 누가 그의 주재를 벗어날 수 있는가? 누가 그의 안배(安排)를 벗어날 수 있는가? 만물은 모두 그의 눈앞에서 생존할 뿐만 아니라 그의 주재 아래에서 번식하고 있다. 그의 행사와 능력은 인류가 그의 확실한 존재를 시인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하고 그가 만물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을 시인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를 제외하고, 그 어떤 것도 이 우주를 주관할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이렇게 끊임없이 이 인류에게 공급할 수는 더욱 없다. 네가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할 수 있든 없든, 하나님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너의 운명은 분명 하나님의 명정(역주: 운명적으로 정함) 가운데 있고, 또한 하나님이 영원토록 만물을 주재하는 그분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의 존재와 권병은 결코 인류가 인식할 수 있는지, 납득할 수 있는지에 근거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만이 인류의 과거ㆍ현재ㆍ미래를 알고 있고 또한 오직 그만이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네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이 모든 것은 머지않은 장래에 인류에게 직접 보여 줄 것인데, 이것도 역시 하나님이 곧 이루려는 사실이다. 인류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살고 죽는다. 인류는 하나님의 경영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고 또 두 눈을 감기도 하는데, 이렇게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왔다가 가고 갔다가 또 온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이다. 하나님의 경영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전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인류에게 그의 존재를 알게 하고 그의 주재를 믿게 하며 그의 행사를 보게 하여 그의 나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계획이고 수천 년 동안 경영해 온 그의 사역이다.

     창세로부터 하나님은 그의 경영 사역에 착수하였는데, 그 경영 사역의 핵심은 바로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은 다 사람을 위해 있게 된 것이다. 그의 경영 사역이 일분일초나 눈 깜빡할 사이 혹은 1~2년에 되는 것이 아니라 수천 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더 많은 것들을 창조해야 하였다. 예를 들면 해와 달, 각종 생물 및 인류의 양식과 인류의 생활환경이다. 이것은 하나님 경영의 시작이다.

    이어서 하나님이 인류를 사탄에게 내주어 사람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었다. 그리하여 점차 하나님의 첫 시대의 사역, 즉 율법시대의 이야기가 생기게 되었다…… 수천 년 동안 율법시대가 지속되면서 인류는 그 시대의 인도에 익숙해져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점점 하나님의 보살핌을 멀리하였다. 그리하여 사람은 모두 율법을 지키는 동시에 우상을 섬기고 악한 일을 행하였다. 그들은 여호와의 보호를 잃게 되었고 다만 성전 안에서 제단만 지키면서 생활하였다. 사실, 하나님의 사역은 일찍이 그들을 떠났다. 설령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전히 율법을 고수하면서 입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심지어 스스로 자랑스럽게 자신만이 여호와의 백성이고 선민이라 여길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은 조용히 그들을 버리고 떠났다……

    하나님은 사역할 때, 언제나 한 곳에서 조용히 떠나는 동시에 또 다른 곳에서 소리 없이 그가 새로 개척한 사역을 하는데, 마비된 사람에게 있어서 이것은 다만 천일야화이다. 사람은 언제나 낡은 것을 가장 소중한 보물로 삼아 지키면서 생소하고 새로운 것을 보면 원수처럼 혹은 눈엣가시처럼 여긴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새로운 사역을 하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만물 가운데서 오직 사람만 제일 마지막에 소식을 알게 된다.

    여호와가 율법시대에서 하신 역사를 뒤이어 하나님은 조금도 예외 없이, 육신을 입고 두 번째 부분의 새 사역을 시작하였다. 즉, 성육신하여 사람이 되었고 10년, 20년 넘도록 지내면서 신도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말씀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에야 소수의 사람들이 그가 말씀이 육신된 하나님임을 시인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골치 아프게도 뜻밖에 바울이라고 하는 자가 나와서 죽을지언정 완고하게 하나님에게 끝까지 적대하였다. 그는 격살당한 후 사도가 되고 나서도 여전히 옛 본성을 고치지 않고 많은 서신을 썼다. 불행하게도 후세 사람들은 그의 서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삼아 누렸고 심지어 신약 성경에 편입시켜 하나님의 말씀과 똑같이 취급하기까지 하였다. 이것은 그야말로 인류에게 성경이 있게 된 이래 가장 추한 일이다. 이것은 사람이 어리석기 짝이 없어서 범하게 된 착오가 아닌가? 하나님이 은혜시대에 하신 사역을 기록한 내용에 사람의 서신이나 영적 수양으로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을 사칭한 것이 있어서는 전혀 안 된다는 것을 어찌 모르단 말인가? 이런 것은 모두 화제와 동떨어진 말이니 본 화제로 돌아오자. 하나님의 제2단계 사역이 완성되었을 때, 즉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하나님은 이미 사람을 죄에서(즉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오는 사역을 성취하였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인류는 주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게 되었다. 명의상으로 말하면 사람이 구원받아 하나님 앞에 오는 데에 있어서 사람의 죄는 더 이상 장벽이 되지 않고 더 이상 사탄이 사람을 참소하는 약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죄 있는 육신의 형상이 되어 미리 겪으며 하나님 자신이 속죄제가 되는 실제 사역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류는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하나님의 육신, 즉 죄 있는 육신의 형상으로 말미암아 속량받고 구원을 얻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사탄에게 노략당한 후 한 걸음 더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그 단계 사역은 율법시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한층 더 깊어진 하나님의 경영이다.

    하나님의 경영은 바로 이렇다. 즉 무엇이 하나님인지, 무엇이 조물주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 왜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이런 인류를 하나님은 사탄에게 내어 주어 사탄이 제멋대로 패괴(역주: 부패, 타락)시키도록 허락한 다음, 또 인류가 완전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탄을 버릴 수 있을 때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인류를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영이다. 이것은 듣기에 마치 신화 같고 또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다. 사람이 그것을 신화와 같다고 여기는 것은 이 수천 년 동안 사람에게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발생하였는지 모르고 또한 이 우주 궁창 가운데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발생하였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며, 더구나 평범한 인간의 눈으로는 이 물질세계의 배후에 있는 한층 더 기묘하고 무서운 그 세계를 전혀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의의와 하나님 경영 사역의 의의를 전혀 모르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인류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탄의 패괴를 전혀 거치지 않은 아담과 하와 같은 인류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경영은 바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순복하는 한 무리 인류를 얻기 위한 것이다. 이 인류는 비록 사탄에게 패괴되었지만 더 이상 사탄을 아비로 삼지 않고 사탄의 추악한 몰골을 인식하여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 앞으로 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무엇이 추하고 무엇이 거룩한지에 대한 대비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위대함과 사탄의 사악함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런 인류는 더 이상 사탄을 위해 효력(역주: 상대를 위해 힘을 쓰며 일한다)하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사탄에게 참배하지 않고 사탄을 공양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얻어진 한 무리 인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의 의의이다. 이번의 경영 사역에서 인류는 사탄이 패괴시키는 대상이고 동시에 또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이며 또한 하나님과 사탄이 서로 쟁탈하는 산물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사역을 하는 동시에 한 걸음씩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왔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졌다……

    더 나아가 하나님나라시대에 이르렀다. 이 시대의 사역은 한 단계 더 현실적이면서도 사람이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역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하나님의 형벌의 채찍이 점점 더 사람에게 다가가고 동시에 하나님은 자신의 얼굴을 더욱더 뚜렷하게 나타내 사람에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인류는 속량된 후 정식으로 하나님의 집에 돌아왔다. 원래 잘 누릴 수 있겠다고 여겼던 인류가 오히려 하나님께 호되게 맹공격을 당하였는데, 이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알고 보니 하나님의 자민(子民)이 되려면 이와 같은 세례를 ‘누려야’ 했다. 이와 같은 대우로 사람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난 하나님이 비싼 값으로 사온, 잃어버린 지 오래된 그 양인데, 왜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대하실까? 설마 하나님이 그분의 방식으로 나를 비웃고 드러내려는 것은 아니겠지? ……’ 수년간의 경력(역주: 체험)이 지나갔다. 연단과 형벌의 고통을 겪은 인류는 온갖 풍상을 다 겪게 되었다. 비록 지난날의 ‘광채’와 ‘낭만’은 잃었지만 부지중에 사람됨의 이치를 알게 되었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오래된 깊은 마음을 알게 되었다. 차츰차츰, 사람은 야만스럽고 길들이기 어렵고 하나님을 여러모로 오해하고 사치한 요구를 한 자신을 증오하기 시작하였다. 시간은 되돌리지 못한다. 지난 일들은 사람이 참회하는 기억이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랑도 사람의 새 삶의 동력이 되었다. 사람의 상처는 날마다 아물어 가고 몸이 건강해져 사람은 일어나 전능자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는 계속 나의 곁에서 지키고 계셨다. 그의 웃는 얼굴과 아름다운 모습은 여전히 그렇게 마음을 설레게 하며, 그의 마음은 여전히 그가 만든 인류를 그토록 걱정하며, 그의 두 손은 여전히 처음과 같이 그렇게 따뜻하고도 힘이 있었다. 사람은 마치 에덴동산에 있던 그때로 돌아간 듯하다. 하지만 이때의 사람은 더는 뱀의 유혹을 따르지 않고 더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웃는 얼굴을 맞이하며 가장 진귀한 제물을 바친다―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하나님 경영 사역의 세부적인 부분마다 모두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깊이 배어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든 없든, 그는 여전히 꾸준하게 그가 이루려는 사역을 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경영을 얼마나 알고 있든,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에게 가져다준 도움과 유익은 사람이 다 몸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혹시 네가 오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생명의 공급을 조금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네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려는 결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웃는 얼굴이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경영 사역의 취지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는 인류를 빼앗아 오는 것이지 사탄에게 패괴되고 그를 대적하는 인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5년 9월 23일 발표

2020-02-07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라




    지금 너희에게 자민(子民)이 되기를 추구하라고 하는데, 모든 것이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너희에게 자민이 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나라시대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식으로 하나님 나라의 훈련에 진입하기 시작했으니 앞으로의 삶은 더 이상 지난날처럼 느슨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요구 기준에 이르지 못한다. 너에게 긴장된 분위기가 전혀 없다면 그것은 너에게 향상심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며, 네가 추구하는 것도 흐리멍덩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하나님 나라의 훈련에 들어가면 자민의 삶을 살게 된다. 너는 이런 훈련을 받기 원하느냐? 너는 긴장된 분위기가 있기를 원하느냐? 너는 하나님의 징계 아래에서 살기를 원하느냐? 너는 하나님의 형벌 아래에서 살기를 원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너에게 임하여 너를 시련할 때, 너는 어떻게 실행하겠느냐? 직면하게 될 많은 사실 앞에서 너는 또 어떻게 하겠느냐? 이전에는 생명 방면을 중요시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생명 실제에 진입하기를 중요시해야 하고 생명 성정에 변화가 있기를 추구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 자민이 도달해야 할 바이다. 자민이 될 자라면 모두 생명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 나라의 훈련을 받아야 하며, 생명 성정에 변화가 있기를 추구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 자민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 자민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여라. 즉, 하나님 말세 역사의 모든 말씀을 받아들여라.
    2. 하나님 나라의 훈련에 들어가라.
    3.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받기를 추구하여라. 너의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게 될 때 정상적인 영 생활이 있게 된다. 그것은 자유 경지에서 사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 사랑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살고 있어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4. 하나님께 얻어지도록 하여라.
    5. 하나님의 땅에서의 영광스러운 창현(彰顯)이 되어라.
    이 5가지는 너희에 대한 나의 부탁이다. 내가 한 말은 모두 자민에게 한 것이다. 이 부탁을 받아들이기 싫다면 나도 강요하지 않는다. 네가 참으로 이 5가지 부탁을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으니, 하나님 나라 자민이 되기를 추구하여 하나님 나라 자민이 되는 기준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은 진입의 첫걸음을 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통행되게 하려면 반드시 이 5가지 부탁을 받아들여야 한다. 네가 이 5가지에 도달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어 꼭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훈련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훈련에 들어가는 것은 영 생활에 관련된다. 이전에는 영 생활에 대해 말한 적이 없지만, 오늘 하나님 나라의 훈련에 들어간다면 본격적으로 영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어떤 생활이 영 생활인가?
그것은 너의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며, 마음이 다른 것에 점유되지 않고, 하나님의 그때그때의 마음을 더듬을 수 있으며, 또한 성령이 그때그때 주는 빛의 인도를 받아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이런 생활이 바로 영 생활이다.
    네가 그때그때 주는 빛을 따르지 못한다면, 너와 하나님의 관계는 소원(疏遠)해지는데, 심지어 단절되기까지 할 것이다. 그럼 너에게 정상적인 영 생활이 없게 된다.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는 하나님의 현실 말씀을 받아들이는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너에게는 정상적인 영 생활이 있느냐? 너는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가 있느냐? 너는 성령 역사를 따르는 사람이냐? 성령이 그때그때 주는 빛을 따를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더듬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진입할 수 있으면, 이런 사람은 성령의 흐름을 따르는 사람이다. 성령의 흐름을 따르지 못한다면 너는 틀림없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다. 성령은 향상심이 없는 사람에게 역사할 기회가 없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계속 힘이 생기지 않아 항상 소극적이 된다. 지금 너는 성령의 흐름을 따르고 있느냐? 너는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느냐? 너는 소극적인 ①정형에서 나왔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 하나님의 역사를 기초로 하는 자, 성령의 그때그때의 빛을 따르는 자는 모두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주 확실하다고 믿고,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해도 다 믿는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에 들어가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한 것이다.
    성령의 흐름 속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먼저 소극적인 정형을 벗어 버려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늘 대세를 따르는데, 마음이 하나님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이런 사람은 향상심이 없고 추구하는 기준이 너무나 낮다.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하여 하나님께 얻어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다. 어떤 사람은 양심적으로만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 이르지 못한다. 네가 추구하는 기준이 높을수록 하나님의 뜻에 더 부합된다. 정상 사람에게,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의 자민이 되는 것이 진정한 앞날이고, 가장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인생이다. 아무도 복이 있는 너희와 비교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 말할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육체를 위해 살고 사탄을 위해 살지만, 오늘날 너희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기 위해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의 인생을 가장 의의 있는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선택된 이 무리 사람들만이 가장 의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 그 외의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너희처럼 이렇게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인생을 살 수 없다. 하나님의 택함으로, 하나님의 높임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너희는 진정한 인생을 찾게 되어 어떻게 살아야 가장 가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것은 너희가 훌륭하게 추구하여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고, 하나님이 너희의 영적 눈을 열어 준 것이며, 하나님의 영이 너희의 마음을 감동시켜 너희가 운이 좋게 그의 앞에 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너를 깨우쳐 주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면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한 것이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누릴 때, 영이 감동을 받아 꼭 하나님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면의 힘도 매우 커지고 내려놓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고 느낀다. 너에게 이런 느낌이 있으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것이고, 너의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한 것이다. 그때면 너는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 정말 당신께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택해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의 영광으로 인해 자부심을 느끼고, 당신의 자민이 되어 영광스럽습니다. 저는 당신의 뜻이 통행되도록 완전히 당신을 위해 ②화비하고 바치기 원하고, 저의 일생과 평생의 에너지(직역: 정력)를 다 당신께 바치기 원합니다.” 네가 이렇게 기도할 때면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참된 순복이 있게 될 것이다. 너에게는 이런 경력(역주: 체험)이 있었느냐? 사람이 늘 하나님의 영에 감동을 받게 되면 특별히 헌신하는 기도를 드릴 것이다. “하나님, 저는 당신이 영광받으시는 날을 보기 원하고, 당신을 위해 살기 원합니다. 당신을 위해 사는 것은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의의 있는 일입니다. 저는 절대로 사탄을 위해, 육체를 위해 살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날 당신을 위해 살 수 있는 것은 당신께서 높여 주신 것입니다.” 네가 이런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으면 안 되고, 하나님을 얻지 못하면 안 되며,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얻지 못하면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다고 느껴진다. 이런 기도를 한 번 하고 나면 안에는 끝없는 힘이 생긴다. 너는 그 힘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도 모르는데, 안에는 무궁무진한 힘이 생겨 특별히 하나님이 사랑스럽고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면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것이다. 이런 경력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다. 늘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사람은 생명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완전히 얻겠다는 심지(心志)를 세울 수 있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좀 더 굳세지고,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어 가정, 세상, 얽매임, 앞날 따위는 저 멀리 내버리고 일생의 에너지(직역: 정력)를 하나님께 바치기 원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희망이 있는 사람이다.
    너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였느냐? 너의 마음은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았느냐? 만약 너에게 그런 경력과 그런 기도가 없었다면, 너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위치가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하나님 영의 인도가 있는 사람과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는 사람에게는 모두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뿌리내렸음을 설명한다. 어떤 사람은 “저는 당신처럼 그렇게 진심으로 기도하지 못하고, 또 당신처럼 그렇게 특별한 감동도 받지 못해요. 어떤 때는 가만히 묵상하거나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이 느껴지고, 마음도 하나님께 감동받아요.”라고 하는데, 가장 주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너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할 때면 너의 전인(全人)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될 것인데, 그때면 너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받을 것이다.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깊고 얕은 정도만 다를 뿐, 모두 이런 경력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저는 기도는 몇 마디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교통을 듣기만 했을 뿐인데, 안에 힘이 생겼어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네 안에 하나님의 감동이 있음을 설명한다. 안에 하나님의 감동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교통을 들어도 격려를 받는다. 만약 사람에게 격려가 되는 말을 듣고도 마음에 미동조차 없다면 그 사람 안에는 성령의 역사가 없음을 증명한다. 그가 속으로 간절히 사모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심지가 없고, 성령도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나님의 감동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반응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감동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되지 못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과 무관하게 되고 그도 하나님의 깨우침을 받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반응이 없는 사람은 모두 감동이 없는, 즉 성령의 역사가 없는 사람이다. 새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감동이 있는 사람이고, 성령의 역사가 있는 사람이다.
    너 자신을 가늠해 보아라.
    1. 너는 성령의 오늘날 역사 속에 있는 사람인가?
    2. 너의 마음은 하나님께로 향하였는가? 너에게는 하나님의 감동이 있는가?
    3. 하나님의 말씀이 네 안에 뿌리내렸는가?
    4. 너의 실행은 하나님이 요구한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인가?
    5. 너는 성령이 그때그때 주는 빛의 인도하에서 살고 있는가?
    6. 네 마음에서 권세를 잡고 있는 것은 옛 관념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현실 말씀인가?
    너희가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안에는 어떤 반응이 있었느냐? 네가 이렇게 여러 해 믿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게 하였느냐? 너에게 이전부터 있던 ③패괴 성정에 변화가 있느냐? 너는 하나님의 현실 말씀에 근거해 어떤 것을 생명이 있다고 하는지, 어떤 것을 생명이 없다고 하는지 알고 있느냐? 너희는 잘 알고 있느냐? 하나님을 따름에 있어 가장 주요한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현실 말씀에 근거하는 것이다. 생명 진입을 추구하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기를 추구하든, 모두 하나님의 현실 말씀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네가 교통하는 것과 네가 진입하려고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현실 말씀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 밖에 있는 사람이고, 너에게는 절대로 성령의 역사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그의 발걸음을 따르는 사람이다. 네가 이전에 깨달은 것이 아무리 좋고 아무리 순수해도 하나님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버리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진입에 커다란 장애물이 될 것이다. 성령의 오늘날의 빛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복이 있는 사람이다. 역대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랐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따라올 수 없었다. 이것은 말세 사람들의 복이다. 성령의 현재 역사를 따라오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며 하나님이 어디로 인솔하든 거기로 따라간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성령의 현재 역사를 따라오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의 역사 속에 진입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아무리 많은 사역을 하고, 아무리 큰 고난을 받고, 아무리 많은 길을 뛰어다녔어도 소용없고 하나님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현실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현실 말씀 밖에 있는 사람은 모두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 성령의 현실 말씀 외의 섬김은 모두 육체에 속하고 관념에 속하는 섬김이니,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없다. 사람이 종교 관념 속에서 살고 있으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일을 하지 못한다. 설사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지라도 상상 속에서 섬기는 것이고, 관념 속에서 섬기는 것이므로 전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없다. 성령 역사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그의 뜻에 맞는 섬김이지, 관념과 육체적인 섬김이 아니다. 사람이 성령 역사의 발걸음을 따라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관념 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섬김은 방해하고 교란하는 것이며, 그런 섬김은 하나님의 뜻에 상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과 합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른바 성령 역사를 따라오는 것이란 사람이 하나님의 현시점의 뜻을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현시점에서 요구하는 대로 하며, 오늘날의 하나님께 순복하고 따르면서 하나님의 최신 말씀에 따라 진입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성령 역사를 따라오는 사람이고 또한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고,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최신 역사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있고, 사람의 관념과 사람의 패역을 인식할 수 있고, 사람의 본성과 실질을 인식할 수 있으며, 또한 섬기는 중에서 점차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고, 진실로 참 ④도(道)를 찾은 사람이다. 성령 역사에서 도태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따라오지 못한 사람이고, 모두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배반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이 새 사역을 하였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형상이 그들 관념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대적하고 논단하여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었다.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찾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을 볼 기회가 있고 성령의 최신 인도를 받을 기회가 있다.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려고 작심한 자들은 모두 성령의 깨우침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얻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하나님의 은총에 달렸고, 사람의 추구와 사람의 마음가짐에도 달렸다.
    성령의 현실 말씀에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복이 있는 사람이다. 이전에 사람이 어땠는지에 상관없이, 이전에 성령이 사람에게 어떻게 역사했는지에 상관없이 최신 역사를 얻은 사람은 다 가장 복이 있는 사람이다. 오늘날, 최신 역사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다 도태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새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고, 최신 역사를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사람이다. 왜 정결한 처녀가 되어야 한다고 할까? 그것은 그런 사람이 성령 역사를 찾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또한 옛 관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오늘날 역사에 순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최신 역사를 받아들이는 이 무리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예정한 자들이고, 가장 복이 있는 사람들이다. 너희는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으므로 온 천지와 역대에 너희 이 무리 사람들만이 가장 복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로 인한 것이고, 하나님의 예정과 택함으로 인한 것이며,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고 음성을 발하지 않는다면 너희에게 오늘날의 정경이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모든 영광과 찬송을 하나님께 돌린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높여 준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이런 것을 생각한다면 계속 소극적이 될 수 있겠느냐? 네가 힘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오늘날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 격타(擊打), 연단을 받아들이고 더욱이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예정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형벌을 받을 때에 너무 고뇌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너희에게 한 사역과 베풀어 준 복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고, 너희에게 더해 준 모든 것을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한다. 종교인은 너희와 비교할 수 없다. 비록 너희에게 성경 지식이 그렇게 많지 않고, 종교 도리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너희에게 한 사역으로 인해 너희는 역대 이래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많은 것을 얻었다. 그러므로 이것을 너희의 가장 큰 복이라고 한다. 이것으로 인해 너희는 더욱더 하나님께 자신을 바쳐야 하고, 더욱더 하나님께 충성해야 한다. 너는 하나님이 높여 준 것으로 인해 좀 더 힘을 내고 분량을 잘 예비하여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이 준 지위에 바로 서서 자민이 되기를 추구하고, 하나님 나라의 훈련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얻어져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증거가 되고자 하는 이 몇 가지 심지가 있느냐? 너에게 이런 심지가 있다면 마지막에는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져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증거가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부탁은 하나님께 얻어져 그의 영광스러운 증거가 되는 것임을 너는 알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성령의 현실 말씀이 바로 성령 역사의 동태이다. 성령이 이 한동안에 늘 사람을 깨우쳐 주는 것은 성령이 역사하는 동향이다. 지금 성령이 역사하는 동향은 어떤 것일까? 바로 뭇 자민을 하나님의 현실 역사에 들어가고, 정상적인 영 생활에 들어가도록 이끄는 것이다. 정상적인 영 생활에 들어가는 것에는 몇 가지 절차가 있다.
    1. 먼저 너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기울인다. 하나님이 지난날 했던 말씀을 추구하지 않고 연구하지도 않고 더욱이 대조하지도 않으며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의 현실 말씀에 기울인다. 만약 계속 하나님이 지난날 했던 말씀이나 영적 서적 혹은 다른 설교집을 보려고 하면서 성령의 현실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혐오한다. 네가 성령이 그때그때 주는 빛을 받아들이기 원한다면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의 현실 말씀에 기울여라. 이것은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의 현실 말씀의 기초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가 하나님과 교통하며, 네가 추구하여 도달하려는 기준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심지를 세운다.
    3. 이전의 케케묵은 논법과 도리를 지키지 않고 성령의 오늘날 역사의 기초에서 진리에 깊이 들어가도록 추구한다.
    4. 성령의 감동을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간다.
    5. 성령이 현재 가고 있는 길에 진입하도록 추구한다.
    어떻게 성령의 감동을 구해야 할까? 하나님의 현실 말씀 속에서 사는 것과 하나님이 요구한 기초에서 기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기도하고 나면 성령은 반드시 너를 감동시켜 줄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현실 말씀의 기초에서 구하지 않는다면 소용없다. 너는 마땅히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대적하였고, 당신께 정말 많은 빚을 졌습니다. 저는 너무나 패역하여 늘 당신을 만족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구원해 주시기 원합니다. 저는 끝까지 당신을 위해 ⑤효력하고, 당신을 위해 죽기 원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심판하시고 형벌하셔도 저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당신을 대적하였으니 죽어도 마땅합니다. 저의 죽음으로 인해 모든 자들에게 당신의 공의 성품을 보게 하소서.” 네가 이렇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할 때면, 하나님이 들어줄 것이고 또한 너를 인도해 줄 것이다. 만약 성령의 현실 말씀의 기초에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성령이 너를 감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것에 따라 “하나님, 저는 당신의 부탁을 받아들여 그 부탁에 충성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당신의 영광을 위해 일생을 바치기 원하오니, 저의 모든 행위가 자민의 기준에 이를 수 있도록, 제 마음이 감동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또한 저의 모든 행실로 사탄을 수치당하게 하고 제가 마지막에 당신께 얻어질 수 있도록 당신의 그 영이 항상 깨우쳐 주시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이런 기도를 하면 성령은 반드시 역사할 것이다. 많은 말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건은 네가 하나님의 뜻을 더듬어 냈는지에 있다. 너희 모두는 다음과 같은 경력이 있었을 것이다. 예배하고 기도하다 보면, 성령 역사의 동태가 고조에 이르러 모든 사람의 열의를 불러일으킬 때가 있는데, 그때 어떤 사람은 통곡하고 눈물 흘리며 하나님 앞에서 통회 기도를 하고, 어떤 사람은 심지를 표하고 서원을 한다. 이것은 성령이 역사하여 이루려는 효과이다. 지금 가장 관건적인 것은 모든 사람이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기울이는 것이다. 지난날의 말씀을 중시해서는 안 된다. 네가 계속 이전 것을 고집한다면 성령은 너에게 역사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 중요성을 보았느냐?
    너희는 성령이 현시점에서 가고 있는 길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느냐? 위에서 말한 몇 가지는 성령이 지금과 앞으로 이루려는 것이다. 즉, 성령이 가고 있는 길이고, 사람이 마땅히 추구하여 진입해야 할 것이다. 생명 진입에 있어 최소한 도달해야 할 것은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기울여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하나님에 대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며, 진리에 깊이 들어가기를 추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요구한 목표를 향해 추구하는 것이다. 너에게 이런 힘이 있을 때는 하나님이 너를 감동시켰음을 설명하고, 너의 마음도 하나님께로 향하기 시작하였음을 설명한다.
    생명 진입에 있어 첫 번째 단계는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기울이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성령의 감동을 받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어떤 효과가 있게 될까? 더 깊은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며 모색할 수 있게 되고, 적극적인 방면에서 하나님과 협력할 수 있게 된다. 지금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은 목표 있게 추구하고, 목표 있게 기도하며, 목표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본분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비로소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이라고 한다. 너는 하나님에게만 하라고 하면서 자신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 찾고 구하지도 않는다면, 그게 무슨 협력이겠느냐? 사람이 협력하는 요소가 없고, 목표 있게 훈련하거나 진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협력이라고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⑥명정에 달려 있고 다 하나님께서 혼자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신다면 사람이 어떻게 행할 수 있겠어요?”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정상적이고 전혀 초자연적이지 않다. 네가 주동적으로 찾고 구해야 성령이 역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반드시 하나님께 역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네가 추구하지도 진입하지도 않고,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도 전혀 없다면 하나님은 역사할 기회가 없다. 하나님의 감동은 어떤 경로를 통해 찾게 될까? 기도와 하나님을 가까이함으로 찾게 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의 기초에서 해야 한다는 것임을 잊지 말라. 네가 늘 하나님의 감동을 받게 될 때면, 너는 육체의 통제를 받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남편, 아내, 아들딸, 금전 따위에 통제되지 않을 것이고, 오로지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할 것이다. 그때면 너는 자유의 경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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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②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

③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④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⑤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⑥명정(命定): 명하여 정함.

2020-02-06

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네가 갓난아기로 이 인간 세상에 와서부터 너는 너의 직책을 이행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명정(역주: 운명적으로 정함)으로 인해 너의 배역을 맡아 인생의 여정을 시작한다. 너의 배경이 어떠하든, 앞날의 여정이 어떠하든, 어쨌든 하늘의 섭리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오직 그 한 분, 만물을 주재하는 그분만이 이런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초에 인류가 존재하고부터 하나님은 줄곧 그렇게 그의 사역을 하고 있고 이 우주를 경영하고 있으며 만물의 변화 법칙과 운행 궤적을 지휘하고 있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게 살포시 하나님의 감미로움과 비와 이슬의 자양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생존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어두운 밤이 살며시 다가올 때, 사람은 모두 알아차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어두운 밤이 어떻게 오는지 또 어디로부터 오는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이 살며시 물러갈 때 사람들은 밝은 낮을 맞이하게 되는데, 사람의 마음은 밝은 낮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어두운 밤을 몰아냈는지 더욱 모르고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순환되는 어두운 밤과 밝은 낮의 변화와 바뀜은 인류를 하나 또 하나의 다른 시기와 다른 시대의 배경으로 이끌어 들어갔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매 시기 사역과 매 시대의 계획도 성취하였다. 사람은 그 서로 다른 시기에 하나님을 따라왔지만 하나님이 만물 생령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어떻게 만물을 지배하고 지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고 이전의 사람들까지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 원인을 따져 보면, 하나님의 행사가 너무 은밀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이 아직 실현되지 않아서도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영이 하나님과 너무 멀어져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는’ 동시에 사탄을 섬기는 지경에 처했는데도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해서이다. 하나님의 발자취와 나타남을 주동적으로 찾는 사람은 없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도 없으며, 사탄과 악한 자에게 잠식되어 이 세상에 적응하려 하고 이 사악한 인류의 생존 법칙에 적응하려 한다. 이 지경에 처해 사람의 마음과 영은 사탄에게 바치는 진상품과 사탄의 먹이가 되었고 더욱이 사탄이 오랫동안 머무는 곳이 되었으며 사탄의 당연한 놀이터로 되었다. 이리하여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됨의 도리를 더 이상 알지 못했고 사람의 생존 가치와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 더 이상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의 언약은 사람의 마음에서 점차 모호해져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이 사람을 만든 의의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과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을 깨닫지 못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온 율법과 법도를 저촉하기 시작했으며 사람의 마음과 영은 마비되었다…… 하나님은 태초에 만든 사람을 잃게 되었고, 사람 또한 원래의 뿌리를 잃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 인류의 비애이다. 사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인류를 위하여 사람을 주연으로 함과 동시에 또 피해자로 하는 비극을 상연하고 있는데, 이 비극의 감독이 도대체 누구인지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드넓은 세상은 벽해상전, 상전벽해 되면서 얼마나 순환했는지 모른다. 만물 중에서 모든 것을 주재하는 그분 외에는 이 인류를 인도하고 거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한 이 인류를 위해 수고하면서 무엇인가를 예비할 수 있는 ‘능력자’는 아무도 없으며, 더욱이 이 인류가 광명의 처소로 나아가고 인간 세상의 우여곡절에서 벗어나도록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인류의 앞날로 인해 탄식하고 인류의 타락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며 또한 인류가 한 걸음 한 걸음 몰락으로 나아가고 돌아오지 못할 길로 나아감으로 인해 슬퍼한다. 하나님을 매우 상심케 하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그 악한 자를 찾아가는 이러한 인류가 어디로 갈지 생각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노여움을 느끼려는 사람이 없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길을 찾거나 하나님께 다가가려는 사람이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슬픔과 아픔을 세심하게 살피려는 사람도 없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서도 여전히 제 갈 길로 가고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가며, 차라리 자신을 하나님과 적이 되는 사탄에게 팔지언정 하나님의 은총과 보살핌을 피하고 있고 하나님의 진리를 회피하고 있다. 만약 사람이 늘 그렇게 자신의 잘못을 고집하며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대할 것인지 누가 또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이 한 번 또 한 번 인류를 일깨우며 권면하는 것은 바로 그의 손에 지금까지 없었던 재난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재난은 사람의 육체와 영혼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인데 사람의 육체를 징벌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까지 겨냥한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하나님의 일깨움과 권면이 보답을 받지 못할 때 하나님이 어떤 노를 발할 것인지 너는 알아야 한다. 이것은 어느 한 피조물도 여태껏 체험해 본 적이 없고 들어 본 적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재난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은 오로지 이 한 번만 인류를 만드는 것이고, 또한 이 한 번만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처음이자 마지막 한 번이다. 그러므로 이번에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애쓰는 마음과 하나님의 절박한 기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이 인간 세상을 창조하였고 하나님이 베풀어 준 생명을 지니고 있는 이 생명체를 인간 세상에 데려왔다. 이에 따라 사람은 부모와 친족이 있게 되어 더는 고독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은 이 물질세계를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나님의 명정 속에서 생존할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의 생명의 숨결이 하나하나의 생명체를 지탱하여 ‘어른으로 성장하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서 생존하며 ‘성장’한다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부모가 길러 준 은혜라고 여기고 사람 생명의 본능이 사람을 ‘성장’하도록 지배하고 있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사람의 ‘생명’이 누가 베풀어 준 것이고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알지 못하며 더욱이 생명의 본능이 어떻게 기적을 창조하는 것인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단지 양식이 사람의 생명이 지속되는 근본이고 의지력이 사람의 생명이 존재하는 근원이며 사람 두뇌의 신념이 바로 사람이 생존하는 밑천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 하나님의 은택과 공급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하나님이 베풀어 준 생명을 그렇게 헛되이 소모하고 있다…… 하나님이 밤낮으로 보살펴 주고 있는 어느 한 사람도 주동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다만 아무런 가망도 없는 사람에게 계획 중의 사역을 하면서 언젠가는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 문득 생명의 가치와 의의를 깨닫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모든 것에 지불한 대가를 깨닫고 사람들이 되돌아오기를 고대하는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 생명의 기원과 연속에 관한 이 모든 비밀은 어느 한 사람도 연구한 적이 없다. 오직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하나님만이 하나님에게서 모든 것을 얻고도 그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이 주는 상처와 타격을 묵묵히 참고 있다. 사람은 생명이 가져다주는 모든 것을 당연하게 누리고 있으며, 하나님도 ‘당연하게’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잊혀지며 토색당하고 있다. 설마 하나님의 계획이 정말 그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설마 하나님 손에서 나온 사람의 이 생명체가 정말 그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하나님의 계획은 단연코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 손에서 창조된 생명체 또한 하나님의 계획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인류를 증오한다 하여 그의 계획을 없애 버릴 수는 없다. 그는 그의 계획을 위하여, 그가 불어 넣은 생기를 위하여 모든 고통을 참고 있는데, 이는 사람의 육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이며, 그가 불어 넣은 생명을 빼앗아 오기 위한 것이지 사람의 육체를 빼앗아 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계획이다.

    이 세상에 온 사람은 모두 생과 사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생사 윤회의 과정을 거쳤는데, 살아 있는 사람은 머지않아 ‘죽고’, ‘죽은’ 사람은 머지않아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런 과정은 모두 하나님이 각 생명체를 위하여 안배한 생명의 역정이다. 하지만 이런 역정과 윤회는 바로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하려는 하나의 사실이다. 즉,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생명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육체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생명을 베풀어 주는 심오한 비밀이고, 또한 생명은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증거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여기지 않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든 아니면 부인하는 사람이든 모두가 불가피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누리고 있다. 만약 어느 날 하나님이 갑자기 생각을 바꾸어 땅의 모든 것을 거두어 가고 하나님의 생명을 빼앗아 간다면 이 모든 것은 다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생명으로써 생명이 있거나 생명이 없는 모든 것에게 공급하고 있으며, 그의 큰 능력과 권병(역주: 권세)으로써 이 모든 일을 질서 정연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 사실은 그 누구도 상상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이 사실이 바로 하나님의 생명 에너지의 구현이고 실증인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너에게 하나의 비밀을 알려 주겠다. 하나님의 생명의 위대함과 생명의 에너지는 그 어떤 피조물도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에도 이러하고 이전에도 이러했으며 장래에도 이러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알려 주려는 또 하나의 비밀은 바로 모든 피조물의 생명의 근원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생명의 형식이나 구조가 어떻게 다르든지, 네가 어떠한 생명체이든지 다 하나님이 제정한 생명의 궤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말하든지 나는 사람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만약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없고 하나님의 공급이 없다면 사람은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분투해도 마땅히 얻어야 할 모든 것을 얻을 수 없으며, 만약 사람의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공급을 잃게 된다면 사람은 삶의 가치와 생명의 의의를 잃게 된다. 하나님의 생명의 가치를 헛되이 낭비하는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어찌 그렇게 자유롭게 다니도록 놓아두겠는가? 역시 이 한 마디이다. 잊지 말라, 하나님은 네 생명의 근원이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이 베풀어 준 이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원래의 것을 빼앗아 갈 뿐만 아니라 더욱이 사람으로 하여금 갑절로 대가를 치르게 하여 하나님이 지불한 이 모든 것을 갚게 할 것이다.

                                                                                                                                       2003년 5월 26일

2020-02-05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말씀 찬양「만물은 하나님께서 정해 준 법칙과 규칙 속에서 살아간다」








영상 소개
만물은 하나님께서 정해 준 법칙과 규칙 속에서 살아간다


1. 몇천 년 지나도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준 빛과 공기를 누리고 하나님이 불어 준 생기로 숨 쉬며 하나님이 창조한 어충(魚蟲)과 꽃과 새를 누리고 하나님이 공급하는 만물을 누리고 있다. 밤과 낮은 여전히 끊임없이 바뀌고, 사계절도 변함없이 바뀌고 있다. 하늘을 훨훨 나는 기러기들은 겨울엔 갔다가 봄이면 변함없이 돌아온다. 물속의 고기는 자신들의 집―강과 호수를 떠난 적 없다.


2. 땅의 매미는 여름에 자신만의 노래를 맘껏 부르고, 풀숲에 귀뚜라미는 가을에 바람을 타고 가벼운 소리로 노래하며, 기러기는 무리 짓고 매는 홀로 외로우며, 사자는 사냥하며 살고 사슴은 꽃과 숲을 떠나지 못한다…… 만물 중의 각종 생령(生靈)은 갔다가 오고, 왔다가 또 가며, 순식간에도 변화무쌍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자신들만의 본능과 생존 법칙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공급과 자양으로 생존하는데, 그 본능을 바꿀 만한 사람이 없고 그 생존 법칙을 깰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깰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 하나님의 권병 (1)>에서 발췌